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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서울의 봄, 그리고 Hindsight bias

by 마케터 킴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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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왔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여러 인간군상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자니,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전두환과 신군부 일당의 쿠데타로 날아가버린 서울의 봄. 1979년의 겨울은 지금 보기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환경에 내가 들어갔다면 어떠했을까?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명확하게 갈라서 볼 수 있을까? 화를 내고 비난을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끊임없는 선택을 내리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40년 후에 우리의 선택을 최선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1. 1979년 3월 :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다.

 

육군 1사단장이던 전두환은 3월에 보안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박정희는 자신이 쿠데타로 집권했기 때문에 쿠데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 보안사는 쿠데타를 막기 위한 장치의 핵심이다.

군 간부들의 인적 접촉 정보, 통화 정보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하며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을 사전에 체크하고 방지한다. 

전두환은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육사생도를 이끌고 지지시위를 하여 박정희의 눈에 들었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을 지내는 등 박정희가 군에서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전두환이 쿠데타의 징후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박정희에게 알리게 하려는 의도였다.

박정희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보안사령관 임명이 첫번째라면.... 그 다음은 하나회에 의한 주요 부대 장악이다.

보안사가 쿠데타를 예방하는 것이 임무라면, 특전사와 수방사는 쿠데타가 일어나면 진압하는 것이 임무다. 

 

전두환과 육사 11기생이 주축이 되어 만든 하나회에서 주요 부대를 장악함으로서, 쿠데타의 성공 요건을 만든 것이다.  

하나회 멤버인 박희도(1공수), 최세창(3공수), 장기오(5공수) 특전 여단장이 자신의 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총구를 돌린 것이다.

 

요약하자면, 쿠데타를 막는 장치와, 진압하는 장치를 모두 전두환이 장악한 것이다. 

이 상황을 본다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79년 봄, 당시를 살고 있던 우리에게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쿠데타'라는 단어를 머리에서 떠올릴 수 있을까? 

 

 

2.  10월 26일, 박정희가 죽다. 1212 군사반란. 

 

박정희가 죽었으니, 수사를 해야 하고, 정보의 총 책임자였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수사를 맡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보인다. 그런데, 왜 검찰이 아니고 군이 이 일을 맡았을까? 계엄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죽은 뒤,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리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을 내린다.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지면 대통령(권한대행)이 책임을 맡지만, 부분계엄일 경우 계엄사령관-국방부장관이 책임을 맡는다. 영화에서 도망다니기 바쁜 국방부장관 말이다. 

 

계엄사령부는 권력의 중심이 되었고,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은 중심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기존에 정보활동을 하던 대통령 경호실(차지철), 중앙정보부(김재규)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정보 취합의 핵심은 보안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검찰, 군검찰, 중앙정보부 등 모든 정보/수사기관을 지휘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정승화 사령관 입장에서는 전두환의 오만함, 그리고 군 내의 사조직 하나회가 위험요인이 된다고 판단하고, 전두환을 동해사령부로 전출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장태완 소장(정우성)을 수방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정승화의 계획은 인맥을 통해 전두환에게 전달되고, 전두환은 12월 12일, 정승화를 체포하는 반역행위를 저지른다. 

 

1212 다음날 신문

 

12.12 군사쿠데타는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이 당시에도 불의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진압을 담당한 육군본부의 장성들은 극도의 무기력함을 보인다. 보이지 않는 북괴의 위협 등을 들어 반란군을 진압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

 

이 답답한 모습을 보며, 많은 관객들이 분통을 터뜨린다. 나도 그랬고. 

 

그렇지만, 내가 육본 벙커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지금 영화를 본 입장처럼 명쾌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인가? 

 

3. Hindsight Bias (하인드사이트 바이어스)

 

Behind 할 때 Hind다. 

 

"사후 확신 편향" 이라는 심리학 용어다. 

사후 과잉 확신 편향(hindsight bias), 또는 ‘그럴 줄 알았어’ 효과(knew-it-all-along effect), 잠행성 결정론(creeping determinism)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비해 더 예측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사후 과잉 확신 편향 [hindsight bias]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내 그럴 줄 알았지" 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보통 이런 경우 "그럴 줄 알았으면 그 때 이야기하지 그랬어?"라고 하면 답을 못한다. 

그 때는 그럴 줄 몰랐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있었는데, 어떤 정보가 중요한 정보인지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다른 정보들은 버린다. 

 

나중에 지나보면 자신이 버린 정보들 속에서 사건의 단서가 발견되는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현재를 오버랩시켜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수많은 정치인들을 보면서 살아간다. 많은 정보들이 쏟아진다. 누구 하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충정이 없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중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가? 사후확증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판단을 예리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를 가져와서 현재에 끼워맞추는 것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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